동경 126도 16분 36초, 북위 33도 06분 23초. 국토 최남단이라는 마라도의 지리적 위치는 섬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과거에는 거센 파도와 ‘돈이나 쌀보다 물이 귀한’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금(禁)섬’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한 해 2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휴대전화에서는 서울 친구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울려 대고, 등대 한쪽에 걸터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자장면 시키신 분~”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과거와 미래, 최첨단 문명과 전통, 자연과 인간이 만나고 충돌하는 곳 마라도.

사람이 만든 빛깔로 고색창연하다.

다만 마라도는 제 안에 찾아든 이에게만 그 색을 내보일 따름이다.

 

제주도 남쪽 해상에 자리한 마라도는 우주선을 닮았다.

섬 둘레는 4km 남짓이다.

큰 편이 아니다.

어른 걸음으로 1시간 반이면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밋밋한 산봉우리 하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이다.

 

선착장에서 해안절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마라도의 푸른 초지가 맞아준다.

마라도는 나무가 많지 않다.

섬의 남쪽 국토최남단비가 있는 곳과 중앙의 등대 지역을 제외하고는 초원이다.

가을이면 억새가 만발한다.

또 여름이면 푸른 초원으로 변한다.

 

마라도 여행은 고등학교 학생 수련회나 직장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으로 어울릴 법한 ‘국토 최남단을 찾아서…’  정도이면 충분할 것이다.

볼 것보다는 느낄 것들이 많은 곳이니 빠른 걸음으로 걸을 이유도 없는 섬이다.

그저 태평양에서 불어주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된다.

 

섬 순례는 보통 오른쪽으로 시작한다.

바람과 함께 걷다보면 초콜릿전시관도 만나고 성당도 만난다.

지은 지 몇 해 되지 않는 성당은 마라도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마라도엔 자장면 집이 두 개나 있다.

해물 자장면집은 자신들이 진짜 원조라고 써놓고 자장면의 원조임을 강조하고 있다.

육지에서 흔히 보던 광경이지만 이곳에선 피식 웃음이 난다.


개그맨 이창명과 김국진의 이동통신사 광고, “국토 최남단에서도 터집니다”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는 마라도에 자장면 열풍을 몰고 왔다.
이곳 자장면 집 안팎은 가게가 방송에 소개됐다는 간판과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인사말로 도배돼 있다.

 

해변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남쪽 끝에 국토최남단비가 서 있다.

누구나 기념촬영을 하는 곳이다.

국토최남단비를 지나면 해안선이 절벽으로 변하며 점점 높아진다.

마라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등대가 자리해 있다.

 

마라도 등대는 제주도에서 우도 등대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등대다.
등대는 1915년 봄에 첫 불을 밝혔다.

팔각형 콘크리트 16m 높이로 쌓아올린 하얀 등대는 10초 간격으로 반짝이며, 약 38km가량 떨어진 먼 바다에서도 불빛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태양과 풍력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전기가 끊겨도 중단 없이 바다를 향해 불빛을 발사할 수 있다.

현재 등대에는 등대장을 비롯 등대원 2명이 근무하고 있다.

 

등대에 서면 제주도와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대가 있는 위치는 해발 39m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마라도는 장난감 같은 섬이다.

아기자기한 게 제법 큰 집의 잘 꾸며놓은 정원쯤 되어 보인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마라도까지 30분 소요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6~9회 정기 여객선이 마라도를 왕복 운항한다.

성인 왕복 1만5500원.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제주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 거기서 며칠이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마라도에선 수평선이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다.……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는 어느 사진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바람이 일제히 휴식에 들어가는 계절.

넓은 초원에서 쉴 새 없이 열애 중인 여름바람을 만날 수 있는 마라도로 번잡한 마음 한번 내려놓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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