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가치의 변화가 멀미 날 정도다. 권선징악은 ‘고전읽기’에서나 나오는 구시대의 유물이 됐고, 감탄고토와 논리적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잔재주가 요구되는 시대다.신문도 이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포털이 생기기 전에는 지하철 구내매점에서 신문을 팔았고, 종착역 선반에는 읽다 버린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NAVER와 Daum이라는 포털이 생기기 전까지는 종이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했다. 그러나 이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본다. 윤전기 한 대만 갖고 있으면 3대가 먹고살던 시대는 가고, 이제 신
“정치권력이 행정력보다 기형적으로 비대한 현실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우리나라 삼권분립은 견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받들기 위한 도구로 존재할 뿐이다. 입법부 중심의 거대 정치권력에 행정부와 사법부가 들러리 서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수장으로 행정부와 사법부를 통제해왔다.정당을 등에 업은 정치권력은 이권을 챙기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권 투쟁을 벌이다가도 정당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협치를 펼친다. 이권 카르텔의 뿌리는 사실 정치권
창간호 만들 때의 그 설렘과 떨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년 전의 일이 됐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화가 생겨나고 소멸했다. 작은 사건의 발생과 종말이 거듭되면서 세상은 변천이란 이름으로 진화한다.2008년 이후 지난 14년 동안 언론인의 잣대로 가장 많이 변화된 것을 꼽자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활자 신문의 위축이다. 이제 사람들은 컴퓨터에서 뉴스를 보고,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접한다. 사람들은 뉴스 제공자가 누구인지, 어느 신문 어떤 기자가 썼는지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가 뉴스 제공자인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결국, 전기요금이 오른다. 전기요금 인상은 모든 제조원가의 상승을 동반한다. 국산품의 가격 경쟁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산단가가 싼 원자력발전소를 없애고 신재생에너지에 집착한 현 정부의 정책실패이자 예견된 결말이다. 안전과 생산 경쟁력, 환경과 국제 경쟁력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어느 하나를 등한시할 수 없는 문제다. 조화롭게 조율해 나가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허구에 불과한 영화 한 편에 눈물 찔끔찔끔 흘리면서 원전을 없애버렸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의 대부분이 생산론자보다는 환경론자였기
밝고 즐거운 노래를 불러야 복을 받는데, 경쾌한 노래가 나오지 않는 요즘이다. 우울한 노래만 가슴에 와닿고, 늘어지는 노래만 흥얼거리게 된다.코로나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로 우리는 많이 힘들어하고 지쳐 있다. 확진자가 600명 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현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백신이 넘치도록 확보돼 있다면 희망이라도 가질 텐데 그도 아니다. 오히려 접종능력은 충분한데, 백신이 없어 접종에 동원될 의료인력이 남아도는 슬픈 현실이다.진솔하지 못한 정부 당국의 발표 역시 우리를 지치게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왜 한결같이 솔직하지 못할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부산시민의 표를 얻기 위한 여당의 선제 공세에 늦게 뛰어든 야당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이라는 떡밥을 하나 더 얹었다. 조 단위의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공항 건설에 ‘건설’이라는 ‘과학’이 사라졌다. 대신 정치가 비집고 들어왔다. 집권당이 가덕도 카드에 올인하는 가운데 눈치만 보던 야당도 같이 놀자며 판에 끼어들었다. 공항이라는 인프라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미끼로 전락하고 있다.가덕도 신공항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언급한 이후 선거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특단의 공급대책을 내놓겠다. 예측했던 것보다 수요가 많아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설 이전에 국토교통부에서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어떤 대책이 나올지 기대된다.”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 회견 중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대답의 핵심내용이다. 대통령의 말을 뒤집어 보면 ‘주택 수요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의 물량을 공급해 수요를 충족시키겠다’ 는
기어이 통과되고 말았다. 지난 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전광석화같이 통과시켰다. 산업재해나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근로자 사망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훨씬 세다. 공포 후 1년이 지나면 시행된다. 단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근로 50명 미만인 사업장과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공사에 대해서는 3년 유예기간을 뒀다. 하나 더.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
수도권에서 자녀 2명과 같이 거주하는 40대 A씨는 아파트 입주자 모집 공고일 한 달 전 자녀가 3명 있는 30대 B씨와 혼인한다. 부양가족 6명을 거느린 A씨는 수도권 분양주택에 가점제로 청약을 신청, 당첨됐다. 현장조사 결과 B씨와 B씨의 자녀 3명이 모두 입주자 모집 공고일 직전 A씨의 주소지에 전입했다. 그리고 당첨 직후 원 주소지로 전출하고 곧바로 이혼한 사실이 확인됐다.위장전입에 위장결혼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상반기 분양 주택단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부정청약 현장점검 결과 나타난 197건의 부정청약 사례 중 하나이다.
세밑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동짓달 30일 낮, 구로디지털단지 내 작은 사거리. 횡단보도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자 손수레를 끌던 60대의 남성은 주저앉았다. 인도의 차가운 경계석 위에 엉덩이를 붙인 그는 다리를 뻗더니 허리를 숙였다.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하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손수레에 얼기설기 실린 폐지와 폐박스가 초로의 주인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신호가 바뀌었으나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자동차들은 그와 손수레를 피해 다닌다. 누구하나 경적을 울리며 야박하게 굴지 않는다. “괜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를 가둬두고 옆의 가이거 뮐러 계수기 안에 방사능 물질을 넣어 둔다. 반감기 동안 방사능 물질이 붕괴하면 ‘가이거 뮐러 계수기’에 검출되고 여기에서 전류가 발생해 기계장치가 작동된다. 이때 기계장치는 방사능 물질이 든 병을 깨뜨리게 된다. 따라서 고양이는 방사능에 중독돼 죽게 된다.그런데 실제로 상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 고양이의 상태는 어떨까. 이론대로 죽어 있을까, 아니면 살아있을까. 양자 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죽어 있다는 입장과 살아있다는 입장을 각각 반반씩은 받아들일 수 있다. 뚜껑을
우주 속 52억4000만㎞를 비행하던 작은 매(하야부사2) 한 마리가 돌아왔다. 하야부사2는 지난 2014년 12월 3일 발사됐다. 발사에는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미쓰비시중공업이 공동개발한 로켓이 사용됐다. 작년 4월 지구에서 약 3억4000만㎞ 떨어진 어린 왕자가 살던 소행성 ‘류구’(소설 속 소행성은 B612)에 도착한 하야부사2는 내부 물질을 채취한 뒤 11월 지구를 향해 출발했다. 하야부사2는 지난 6일 호주의 우메라사막 한 가운데에 신비한 보물이 든 알(캡슐) 하나를 던지고 다시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앞으
정부의 스물네 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보름이 돼가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까지 글쎄다. 야구로 치면 8회 말 공격까지 끝낸 상태다. 24명의 타자가 나와 공격을 했지만 성적은 시원찮다. 타자들의 스윙모습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투수가 던진 공을 맞추기 위해 이를 악물고 덤벼드는 모습이 십 수 년 전에 본 것과 다름이 없다. 경기의 진행과정과 결과도 비슷하다. 내야땅볼에다 외야플라이 등 득점과는 거리가 멀다. 지리멸렬한 공격만이 이어졌다. 득점은 상대팀에서 올린다. 이제 정규게임을 마치기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3개. 지난 번
기어이 삽질을 시작했다. 서울시가 지난 16일부터 광화문광장 개선공사에 착수했다.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코로나가 유행하는 지금이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더구나 시장이 없는 대행체제에서 800억 원에 가까운 시민혈세를 쏟아 부을 만큼 사안이 시급하지도, 위중하지도 않다. 공사기간 내내 초래될 교통 불편은 고스란히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광장이란 무엇인가.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역사의 빈
산불 연기에 오염된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면 어떤 맛이 날까. 똥 맛에 플라스틱 맛이 난다. 연기가 포도에 스며들면서 만들어진 탄소화합물 페놀 성분 때문이다. 페놀은 자연 상태의 포도에도 일정량이 존재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나쁜 맛을 낸다. 지난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주를 대형 산불이 휩쓸 때 NBC 방송이 보도한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현지 와이너리와 포도밭 농장주들은 오염된 포도로 와인을 제조하면 상품화가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역이기주의가 도를 넘고 있다. 지역의 건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 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서 났다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99년 전 현진건이 개벽에 발표한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이 아내에게 한 말이다. “누가 당신께 약주를 권했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밤낮으로 편 가르기하고 싸움박질 만하는 사회를 개탄하며 내뱉은 푸념이다. 아내는 사회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조선에만 있는 요릿집 이름 정도로 이해한다.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한 시점을 되돌아보면서 ‘만약 그때 이랬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질문을 한다. 사실 만이 역사이기는 하지만 굳이 가정법을 써가면서까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단순한 흥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슈베르트가 전염병으로 요절하지 않았다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돌팔이 의사 테일러에게 눈 수술을 맡기지 않았다면….이건희 회장이 떠났다. 오늘 오전 서울 삼성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한남동 자택과
시멘트업계가 다시 지역자원시설세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 때 불발된 지역자원시설세 개정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이철규 의원이 시멘트 생산 1t당 1000원을 부과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시멘트 생산 외부불경제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범위가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강원도와 강릉시 등 시멘트 공장이 소재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입법추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는 화력발전 지역자원시설세 세율인상을 추진하는 인천,
우리말과 글이 신음하고 있다. 외래어에 치이고, 정치인에 오염되고, 신조어에 멍들고 있다. 토착화된 일본어의 기세도 여전하다. 본래의 뜻이 각색되고 왜곡된 채 사용되는 단어도 부지기수다.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압축되고 급조된 언어들은 마치 외계인 말 같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기능을 넘어 사용자의 품격까지 보여준다. #1“이봐 김 씨, 공구리(콘크리트) 가다마리(굳기)가 아주 잘됐어. 10루베(㎥)가 넘는데도 말이야. 바라시한(뜯어낸) 가타와쿠(형틀)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가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여전히 기세를 꺾지 않고 있다. 코로나에 길이 막혀 고향으로 가야할 사람들이 귀성을 포기한다. 부모형제와는 스마트폰을 매개로 명절을 즐겨야 할 판이다. 첨단의 이기에 감사라도 표해야 할 지경이다.코로나는 질병이다. 질병은 전쟁보다 무섭다. 질병에 의한 사망자가 전쟁에 의한 사망자보다 훨씬 많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무려 2억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346~1352년 사이 유럽 인구의 3분의1 가량이 사라졌다. 일부 도시에서는 인구의 70%가 사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