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리모델링과 관련 ‘선조합 설립 후사업추진’을 명문화한 주택법 개정을 놓고 업계와 정부간의 의견이 정면 충돌한 가운데 지난 10월 6일자로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주택법 개정안은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10월 23일 법제처로 넘어갔다.
입법 예고기간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완충장치.
그러나 국토부가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은 이해 당사자의 수 많은 반대의견이 제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정 없이 규개위로 넘어갔고 규개위 심사에서도 걸러지지 않은 채 법제처로 넘어 갔다.


업계와 정부의 입법시각에 마찰을 드러낸 문제의 42조 4항이 삭제되지 않고 규개위로 넘어간 것은 입법예고 기간동안 다양한 의견을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우선 노출했다.
특히 리모델링 시장 활성화라는 문제와 현장 상황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건축물의 안전 문제가 숨어 있는데도 여과없이 넘겨졌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지난 6월 국토부에 리모델링 사업과 관련 공문을 보내, 시공자 선정 시기와 방법이 없으니 도정법(재건축 재개발 관련 법) 규정을 준용할 것을 건의했고 국토부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신설된 42조 4항은 “하여야 한다”로 표기된 강제조항으로 “할 수 있다”로 표기되는 임의조항과는 법적 강제력이 다르다.
이 때문에 이번 개정안이 원안 통과될 경우, 리모델링을 추진하려는 주택 단지는 반드시 이 법의 규제를 따라야 하며, 시공자가 현장에 맞는 설계안을 제시해 주민의 동의를 구하는 종전의 방식은 불법이 된다.


시공자 선정 시기와 방법에 대한 형식적 법규정이 필요했다면 차라리 ‘선조합 설립 후시공자 선정’토록 하거나 기존 방식대로 ‘시공자 선제안 후조합설립’ 방식을 현장 여건에 따라 택할 수 있는 임의규정 정도로 해도 무리가 없다.
특히 국내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수행하는 업체가 쌍용건설 대림산업 현대건설 삼성건설 대우건설 등 일부업체에 머물러 있고, 기존의 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지하 터파기 공사를 수행할 역량을 가진 업체도 일부업체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조합을 먼저 설립하고 설계를 확보해도 시공능력을 가진 시공자가 안전을 토대로 설계를 고칠 수밖에 없는 여건에 부딪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인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 같은 현장 여건에 대한 검토없이 국토부를 떠났고, 규개위에서도 문제의 신설 조항을 그대로 둔 채 법제처로 넘겼다.
문제가 되고 있는 42조 4항에 대해 규개위는 업계의 영업활동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법제처에서는 법리해석을 위한 자구 수정만 할 뿐, 다른 반대의견에 대해서는 손질하지 않고 국무회의로 넘긴다.


국무회의에서도 반대의견에 대한 손질은 할 수 없다.
따라서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은 국회 상임위의 심사를 거치게 되는데, 문제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상임위는 사실상 입법 이론가일 뿐, 현장을 경험한 건축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상임위 심의에 앞서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의 개정안 검토절차가 있으나, 의원입법일 경우 꼼꼼하게 검토하나 정부입법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는 것이 통례라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 정도로 정부의 입법 역량을 신뢰하기 때문에 주마간산으로 법안을 검토하는 것이 대체적이다. 
이 때문에 문제의 조항이 입법조사관이나 전문위원들의 알뜰한 검토망에 걸린다면 다행이나, 전문위원들의 검토 범위를 빠져나갈 경우 법안 심사소위원회나 상임위에서 수정되기란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이 법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서울시가 공문으로 보낸 건의서 한 장이 향후 리모델링 현장을 퇴행지배할 처지에 빠진 것이다.  
더욱이 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거나, 정부와 업계간의 의견이 충돌하는 입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본회의 상정에 앞서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하고 있으나, 정부 발의안의 경우 이도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국회 국토위 입법조사관 관계자는 그러나 “의원발의 입법이라고 면밀히 검토하고 정부발의 입법이라고 신뢰해 소홀히 검토하는 일은 없다”며 “의원입법이든 정부입법이든 공히 면밀한 검토를 거치며 정부발의 입법도 논란이 빚어질 경우 공청회에 회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42조 4항 신설에 반대의견을 제시한 업계 관계자들은 “전문위원과 입법 조사관들의 전문성을 믿으며, 실수로 설익은 개정법이 탄생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어쨌든 문제의 이번 주택법 개정안은 법제처 법리심사를 거쳐 국무회의 심사에 상정된 뒤 그대로 국회에 넘겨진다.
국회로 넘어가면 전문위원의 검토와 국토위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상임위에 회부된 뒤, 법제사법위원회의 자구 수정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그러나 남아 있는 입법 심사 과정 가운데 법안을 수정하고 가감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곳은 전문위원과 법안심사소위의 검토를 토대로 한 국토해양위 상임위원회 뿐이다. 


리모델링 업계 관계자는 “전문위원과 법안심사소위에서 허점을 잡아내고 가감삭제를 통한 상임위 수정안으로 손질 되기를 믿는다”며 “리모델링 사업장 여건과 안전성, 그리고 입법의 형식적 조화가 동시에 만족될 수 있는 수정안이 탄생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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