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을 오용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표 앞에, 후원금 앞에 사리분별 못하고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휘두르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이 아직 국회의원으로 남아 있는 것은 입법행위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부실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하고 있는 국회의원별의 법 개정 횟수 감시는 덧셈 아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 이런 통계는 무의미하다. 입법감시가 의미를 가지려면 개정안이 개인과 사회, 국가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해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능력은 입법지식에다 산업현장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법만 알아도 안되고, 산업현장은 알고 있으나 법을 몰라도 안된다. 리갈 마인드(Legal Mind)에다, 산업 현장을 파악하는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법률 전문가라도 산업현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어야만 올바른 법안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개정안은 산업현장의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발의된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의 엔산법 개정안이 발의된 뒤, 건설공제조합, 전문건설공제조합, 설비건설공제조합, 건설엔지니어링공제조합 등은 벌집 쑤셔놓은 듯 바빠졌다. 국회 산자위원들을 찾아다니며 법 이면에 감춰져 있는 ‘업역 충돌’의 실태 알리기에 나서야 했다.
한쪽의 업역이 확장되면, 반대편은 업역을 침해당한다. 문제는 이번 엔산법 개정안의 제안사유와 신구 대조표를 아무리 살펴봐도 ‘업역 확장’이라는 대목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 입법고시에 합격한 법률 전문가도 단언컨대 이를 찾아낼 수 없다.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현직 공제사업 종사자 중, 법을 좀 아는 사람뿐이다. 


이번 엔산법 개정의 핵심은 사업수행의 범위를 한정하는 34조 2항 1호이다. 개정 전 1호는 ‘조합원의 엔지니어링활동(엔지니어링활동에 수반되는 구매·조달·제작 및 설치 등의 일괄수주사업을 포함한다)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보증·공제 및 융자’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될 1호는 ‘조합원의 엔지니어링활동 및 엔지니어링활동이 포함되어 있는 제작·설치 및 공사 등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보증·공제 및 융자’이다. 신구 대조표의 엄청난 법적 효력의 차이를 과연 몇명이나 눈치 챌 수 있을까. 입법권을 행사하는 현직 국회의원들은 과연 이 차이를 판독해낼 수 있을까.


일괄수주사업의 의미와 일괄수주사업이 국내 건설현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을 알아야 “아! 업역 확대를 위한 꼼수”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턴키(Turn Key)로 불리는 일괄수주사업의 발주 물량은 건설산업 전체의 20~30%에 불과하다. ‘일괄수주사업’이라는 단어가 개정안에는 ‘공사’로 변경됨으로써 많아야 30%에 불과했던 턴키 시장에서 벗어나 모든 시공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업역은 법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업역을 잠식당하는 쪽에서 보면 이 얼마나 황당하고 흉악한 법인가. 입법권은 이처럼 남의 밥그릇을 뺏는 강도짓이 될 수도 있다. 시장을 침략당하는 쪽에서는 강도 침입보다 더한 비상사태를 맞는다. 혼비백산 이리저리 날뛰며 ‘강도 퇴치’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이번 개정안이 얼마나 졸속하게 발의됐느냐는 것은 34조 2항 12호에서도 드러난다. 신설된 12호는 사업수행 범위를 ‘조합원이 「건설기술 진흥법」, 「건축사법」 등에 따라 수행하는 사업에 필요한 보증·공제 및 융자 등의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상식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조항은 결국 “다른 법을 근거로 설립된 행위주체도 엔산법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로 해석된다. 이는 엔산법이 ‘법 위의 법’이 되는 것이다. 12호와 같은 효력을 내고 싶으면, 건설기술진흥법과 건축사법을 각각 개정해야 하는 것이 법리에 맞다.


입법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법 개정권으로 ‘슈퍼 갑질’을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입법권은 신중히 행사돼야 한다. 개정하고자하는 법이 사회와 국가산업에 어떤 파장을 미치는가를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순기능일 경우에만 행사돼야 한다. 무식하고 몰라서 그랬다면 용서할 수 있으나, 알면서도 입법권을 남용했다면 곡학아세다. 반사적 이익을 얻는 쪽에서는 후원금을 몰아주며 좋아하겠지만, 전체 시장을 교란하며 세상을 왜곡할 정도의 개정안이라면 발의는 철회돼야 한다.

 

2021년 7월 1일

조관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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