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 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서 났다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99년 전 현진건이 개벽에 발표한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이 아내에게 한 말이다. “누가 당신께 약주를 권했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밤낮으로 편 가르기하고 싸움박질 만하는 사회를 개탄하며 내뱉은 푸념이다. 아내는 사회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조선에만 있는 요릿집 이름 정도로 이해한다.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부동산 임대차 시장에 은밀하게 뒷돈이 오가고 있다. 세입자는 집을 비우고 나가면서 집주인으로부터 위로금을 받는다. 집주인은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더 받기 위해 이면계약을 요구한다. 심지어 전셋집을 보는데 ‘관람료’를 내기도 한다. 이 틈바구니에서 중개업자는 급행료를 챙기기도 한다. 우습지만 슬프기도 하다. 모두가 임대차법이 시행된 후 3개월여 만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앞세운 세입자가 나가지 못하겠다고 버틸 경우 집주인은 난감하다. 위로금 또는 이사비용 명목으로 계약서에도 명시되지 않은 돈을 지불하며 달랜다. 위로금은 집주인이 먼저 제시하기도 하지만 세입자가 요구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금액도 갈수록 커져 서울에서는 1000만 원이 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전세 매물이 사라지다보니 시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인 계약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전세계약서에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했다고 명시하거나 보증금 증액 상한선보다 높게 받은 금액은 보증금에서 공제하는 등의 이면계약을 맺기도 한다는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자기 집의 세입자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위로금을 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동산 임대차 시장의 위로금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정책 입안의 중심에 있었던 부총리마저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주고 나서야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홍 부총리야 선의로 위로금을 건넸겠지만 세간에서는 많은 말들이 오갔다. 아무리 미화를 해도 위로금은 뒷돈이고, 뒷돈은 떳떳하지 못한 돈이기 때문이다. 일국의 부총리가 세입자를 내보내는데 위로금을 건네는 마당에 서민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음식점과 같은 가게를 넘겨줄 때 받는 권리금처럼 임대차 시장의 위로금 주고받기가 관행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위로금이 관행으로 굳어지면 곤란하다. 비즈니스 사회에서의 관행은 늘 강자의 입장에서 이뤄진다. 계약 때 세입자가 우위에 있으면 세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집 주인이 우위에 있으면 집 주인 중심의 관행이 이뤄진다. 반복되는 관행은 상습범을 만들고, 상습범은 관행범을 만든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비즈니스 사회의 부조리는 공동체의 선을 갉아먹고 성장한다. 사회가 건강해질 수 없다.

 

원인은 정치가 부동산 시장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앞서가는 한 혼란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부동산 시장이 이처럼 혼탁해진 것은 저금리 때문도 아니고, 전 정권 때문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코로나 때문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스무 번 넘게 보완한 정책이 시장을 치유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시장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의 상황이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위험한 생각이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잃고 휘청 거린지 오랜데 단기간에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란 어렵다. 아파트 신규 공급물량은 줄고, 전세가격은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매물은 격감하고 있다.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공감한다. 당연히 안정돼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설계와 시행 과정에서 오류는 없었는지, 전문가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다시금 정책을 점검해 주거 취약층을 보듬어 주기 바란다.

 

2020년 11월에 만난 소설 속 주인공의 아내는 여전히 임대차 시장을 모른다. 뒷돈을 구하지 못한 남편이 어깨를 들먹거리며 괴로워하지만 정작 뒷돈이 뭔지도 모른다. 그저 한국 사회에만 있는 도깨비 정도로만 생각한다. 남편의 타박에 이번에는 이렇게 외친다. 

 

“이 몹쓸 임대차 시장이 왜 뒷돈을 권하는고?”

 

2020년 11월 5일
전병수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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