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추미애 울산경찰의 가짜 약사사건 등으로 최근 언론에 ‘피의사실공표죄’가 한참 동안 오르내렸다. 이미 사문화된 법 조항으로 취급돼 오던 이 죄목이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어지럽다는 반증이다. 대개 권력의 언저리에서 따지기 좋아하고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죄명이요, 궤변을 늘어놓고 ‘논리적 순발력’이라고 포장하는 정치권에서 자주 인용하는 법 조항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공표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사의 진행과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이 고소나 고발 또는 인지로 범법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을 경우 ‘입건 조사 중’이라고 표현한다. 수사기관이 수사를 개시하고 보니,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구속 수사할 수 있다. 구속영장은 검찰이 법원에 신청하고, 법원이 적법절차를 거쳐 허가해야 비로소 발부된다.


수사기관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때, 사건기자는 “A씨에 대해 B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라고 쓴다. 영장이 발부돼 구속이 완료됐을 경우에는 “A씨를 구속했다”라고 쓴다. 입건 조사 중이든, 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든 검찰이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피의자 신분이다. 기소 이후 법원의 유죄판결을 기다리는 상태를 피고인이라 부르는데, 이 피고인도 항소 상고 등 최종심에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죄인’일지라도 최종심의 유죄확정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취급받는다.


이 때문에 무죄일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범법행위를 함부로 유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피의사실공표죄의 입법취지다. 그러나 일선 수사기관과 사건기자에게 이 법 조항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사건기자가 이 법의 굴레에 씌워져 있다면 단 한 건의 기사도 쓸 수 없다. 해서 기자는 수습기간 동안 사건기사 작성법과 법 조항을 피해 가는 표현법을 배운다. 가령 ‘혐의를 받고 있다. 아닌가 보고 수사 중이다’ 등 사실만 전달하되, 범죄사실을 단정하지는 않은 표현법이다.

 

설령 사건기자가 3인칭 관찰자 시점의 표현법을 몰라 범죄자로 단정하고 썼더라도 피의사실공표죄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피의사실공표죄의 주체는 검찰 경찰 등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에게 국한된다. 따라서 일반인 신분의 기자는 피의사실공표죄의 주체가 될 수 없어 이 죄목으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굳이 책임을 물으려면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다툴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피의사실공표죄의 범죄주체가 될 수 없음에도, 피의사실 유포 행위는 대부분 수사기관과 사건기자 또는 법조기자의 합작품으로 이뤄진다. 사건기자를 아직도 언론계에서는 ‘싸스 마리’라고 부른다. 찰회(察回)라는 일본말이다. 정확하게 ‘사스 마우리’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고참 데스크들은 올챙이 사건기자를 “어이, 싸스마리”라고 부른다.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 사건기자가 조간석간 할 것 없이 경찰서를 헤집고 다닌다. 그럼에도 경찰은 피의자 심문조서를 숨겨놓지 않는다. 오히려 기자들 보라는 듯이 형사계장 책상, 수사과장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으러 가기 전, 심문조서를 가지런히 정리해 뒀다”고 항변하면 죄를 물을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형사과장은 제법 굵직한 범인을 잡았거나 인지 수사로 ‘한 건’ 올리면 맨 윗자리에 보기 좋게 놓아둔다. 보고 써달라는 묵언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만, 이 역시 경찰관이 양심을 숨기고 “통상적인 수사서류 보관방법이었다”고 항변하면 죄를 물을 방법이 없다.


‘관행화된 공모’가 분명한데도 죄를 물을 수 없으니 이미 사문화된 법 조항이다. 그럼에도 아직 존속하고 있는 것은 ‘법의 정신’이 모든 사람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착한 척하기 위한’ 선언적 의미의 조항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공표죄의 뜬금없는 등장으로 우리 사회가 ‘따지기 좋아하고 떼쓰기 좋아하는 풍토로 추락해 가고 있다’는 반증의 지표가 되고 있다. 

 

2020년 8월 26일

조관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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