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에 유행이 있다. 패션에만 유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법률사건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예컨대 IMF 직후에는 금융기관 파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건들이 많았다.
 
필자는 건설협회와 건설기술관리협회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는데, 요즘 은근히 부실벌점 관련된 사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을 하다 보니, 문득 부실벌점 부과 자체가 부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만일 벌점이 제대로 부과되었다면, 그 벌점을 받게 되는 회사나 개인은 이를 깨끗하게 승복할 것이다. 그러나 부과된 벌점이 얼토당토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하는 회사나 개인은 아무리 ‘을’이라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다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부실벌점 대상자는 집행정지를 거쳐 법원에 그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부실벌점 부과가 정당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법원에 의해서 결론짓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필자가 수행한 일련의 부실벌점 관련 소송에서 부실벌점 대상자(회사나 개인)가 승소하는 것이 대부분이니, 이는 결국 부실벌점 부과가 부실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 생각에 이는 담당 공무원 등이 법령을 거꾸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먼저 부실벌점 관련 규정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건설기술진흥법 제 53조: 발주청 등은 건설업자나 건설기술용역업자 등이 공사감리나 건설공사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아니함으로써 부실공사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그 부실의 정도를 측정하여 벌점을 준다.

# 건진법 시행령 제87조 제5항: 이러한 부실 정도의 측정기준, 불이익 내용, 벌점의 공개대상, 방법, 시기, 절차 및 관리 등 구체적인 기준은 [별표 8]의 벌점관리기준에서 정한다.
[별표 8]의 ‘건설공사 등의 벌점관리기준’에서 핵심은 벌점의 측정기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제5조다.

제5조는 벌점의 측정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예컨대 시공 단계의 건설사업관리를 수행하는 건설사업관리용역사업자가 설계도서 및 각종 기준의 내용대로 시공되었는지에 관한 단계별 확인을 소홀히 했다면 벌점이 부과된다. 이에 따라 △주요 구조부에 관한 것으로서 그로 인해 보완시공이 필요하거나 계획공정에 차질이 발생한 경우에는 벌점 3점 △그 밖의 구조부에 관한 것으로서 보완시공이 필요하거나 계획공정에 차질이 발생한 경우라면 벌점 2점 △기타 확인검측의 누락 또는 검측업무의 지연으로 인해 계획공정에 차질이 발생한 경우라면 벌점 1점이 부과된다.


그런데 이러한 [별표 8] ‘건설공사 등의 벌점관리기준’의 전제는 바로 법률, 즉 건진법의 규정이다. 다시 말해 위 ‘기준’은 건진법의 규정 내에서 해석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건진법 제53조는 ‘부실공사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라는, 추상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 [별표 8] “건설공사 등의 벌점관리기준” 제5조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실공사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부실벌점을 부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시공사가 지정공사 방법을 시행인가 당시의 설계도서와 다르게 변경했다고 하더라도 처분청은 그로 인해 부실공사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라야 부실벌점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이고, 만약 변경된 공법에 의해 설치된 지하구조부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보완공사가 필요 없는 경우 처분청의 벌점부과처분은 위법하다.(서울고등법원 2015. 3. 12. 선고 2014누60469 판결)


또한 최근 전주지방법원도 설계도서 및 관련 기준과 다른 시공이 이루어진 경우라도 별도의 보완시공이 필요하거나 계획공정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벌점부과처분은 위법하다고 보았다.(전주지방법원 2020. 1. 15. 선고 2019구합1668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주청은 단순히 절차를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부실벌점을 부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담당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건진법은 ‘부실공사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대해 일차적으로 담당자들에게 그 판단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고려함이 없이 기계적으로 부실벌점을 부과한다면 담당자들의 존재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나아가 이로 인해 발생하는 행정적 손실과 회사 등의 경제적 피해는 말 할 것도 없다.


2020년 6월 5일
법무법인 정진 정혁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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