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에는 오탈자가 없다. 물론 샅샅이 뒤져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탈자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맞춤법이나 어법을 몰라 틀린 채 방치되는 오탈자는 없다는 뜻이다. 내가 왜 이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요즘 주변 마이너 신문에서 오탈자가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천도재를 천도제로 표기하고 있는가 하면, 초고(초벌로 쓴 원고)에 한자를 병기했는데, ‘풀 초’가 아닌 ‘처음 초’를 쓰고 있다. 용적률 건폐율 등에 율·률을 정확히 쓰지 않고 틀리게 쓰는 곳도 보인다.


맞춤법과 어법을 모르고서는 팩트(Fact)를 명쾌하게 전달할 수 없다. 오탈자를 방치하는 건 기자로서의 직무유기다. 몇 년 전 대구의 어떤 실업계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재로 우리 신문을 구독한 적 있었다. 이유가 궁금해 물어봤다. “토목 건축 설계 등 가르칠 내용에 대한 콘텐츠는 대동소이하나, 국토경제신문에는 오탈자 없어 신청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 선생님의 ‘교육혼’에 경외심이 생겼다. 신문에 오탈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평범하고 단순한 가치이면서도 지키기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나는 사건기자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사건기자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하루는 단독보도로 우쭐했다가 다음날은 낙종으로 쥐구멍을 찾는다. 나는 이런 사건기자가 재밌었다. 그날그날 승부가 활자로 드러나니 좋았다. 경남지역 신문이었는데 학벌 좋은 선배들이 즐비했다. 나는 ‘학벌세탁’도 못한 지방대 학사출신이다. 그러니 결과물로 승부를 가리는 게 공평했다. 가진 건 부지런한 맨발뿐, 퇴근할 때도 병원 응급실과 영안실을 들렀고 새벽에도 그랬다. 어떤 날 수간호사가 “좀 전에 MBC 이 기자가 다 체크해 갔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아 다음날은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췄다.


승부욕에 불탄 지 1년도 채 안됐는데, 경쟁사 데스크에 내 이름이 각인되고 스카우트 명단에 내 이름이 돌아다녔다. 나의 입사 좌우명은 ‘우리 회사에서는 나를 붙잡고, 타사에서는 나를 탐내는 기자’였다. 꿈은 1년 만에 이뤄졌다. 취재원도 늘어났다. 어느 일요일 오후 수사과장에게서 ‘삐삐’가 왔다. ‘포니2’를 몰고 현장에 도착하니 서기관급 도경 수사과장도 같이 와 있었다. 단 3명만이 현장에 있었다.


현장을 나와 들뜬 마음으로 원고를 제출했다. 그런데 잠시 뒤 편집국장이 나를 부르더니 “연합통신에서 타전돼 온 기사는 내용이 다른데 어느 게 맞느냐”고 다그쳤다. 현장에 나만 있었으니 내가 맞다고 했으나, “연합에서는 왜 이렇게 썼는지를 네가 설명해보라”는 식이었다. 나는 원고를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와 원고를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경찰서에서 ‘삐삐’를 받으니 회사로 복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회사에 당도하니 사내 게시판에 ‘명 교열부’라는 사령이 게시돼 있었다.


이날부터 난 교열부 기자가 됐다. 외근기자를 내근에 명하는 것은 야생마를 우리에 가두는 것으로 일종의 징벌이었다. 국장은 한 달 정도로 예상하고 징벌을 내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노조에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파업이 결정되는 바람에 향후 4년 동안 인사발령이 없었다. 그러나 징벌로 받았던 4년간의 그 교열기자 생활이 지금의 나에게 값진 선물이 되고 있다. 벗어나고 싶었던 그 지긋지긋한 ‘징역살이’가 지금은 실업계 고교 교재로 쓰일 만큼의 자산이 돼 있다. 우리 기자들도 그만큼 힘들다. “사전을 찾아라. 네가 알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은 모두 틀렸다고 가정하라. 어법까지 익혀라”라는 지시를 완수해야 하니 힘들 것이다.


창간 9주년을 맞았다. 틀리게 써놓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전문지의 종전 이미지를 깨고 전문 신문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창간호 때 다짐했다.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고자 함이다. 전문용어도 풀어서 씀으로써 양질의 정보를 휴식처럼 편안하게 전달하고자 9년째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성은 계속될 것이다.
국토경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께 창간 9주년을 맞아 거듭 감사말씀 올리며, 영원히 지금처럼 함께 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2017년 5월 25일
국토경제신문 발행인 조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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