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가면 ‘고해성사’라는 게 있습니다. 흔히 고백성사라고도 하는데 약간은 다릅니다. 고해성사는 자기 죄를 입술로 열거해 고백한 뒤, 절대자에게 화해를 청한다는 뜻으로 고백에 이어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신앙행위입니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커지듯, 신앙이 깊어지면 고백하고 화해를 청해야할 죄도 많아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죄 짓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불경과 십계명 그리고 공자말씀에 비추어 보면 죄 아닌 것이 거의 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했지요. 그래서 살인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죄 아닙니까. 내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면, 그 상처로 가슴앓이하다 병이 생겼다면 살인에 준하는 도의적 죄를 지은 겁니다. 실제로 “시골에 있는 학벌도 낮고 별 볼일 없는 사람한데 찾아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에 다음날 아침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난 일도 있었습니다. 순자는 좋은 말로 덕담을 건네는 것은 비단이나 포목을 주는 것보다 더 값어치 있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창간 1주년을 맞아 행여 무분별한 글이나 말로써 상대방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를 되돌아봅니다. 언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업종이다 보니 왜곡된 언어, 변질된 언어의 숨은 속뜻으로 행여 상처 남긴 일은 없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특히 인터넷 발전으로 무분별한 언어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이 때에, 품격 있는 단어를 골라 사용한 언론사 언론인이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물론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악행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도 가해야겠지요.  


1년 전, 창간사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독자들이 감동하고 세계가 주목할 때까지 품격 있는 전문지로서의 역할을 다해, 170만 건설인 독자들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약속, 다시 되짚어 봅니다. 1년 전, 전문지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각오를 밝히면서도 세계가 주목하는 시점을 밝히지 못했습니다만, 창간 1주년을 맞는 오늘, 그 시한을 향후 20년이라고 못 박아 두고자 합니다. 건설인 독자 여러분들이 지난 1년간 베풀어 주신 관심과 사랑에 견주어 짐작컨대 향후 20년 뒤에는 독자 여러분들이 기대어 하소연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장해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이 언론이며, 국토경제신문이 1년 만에 이 만큼 성장한 것 역시 독자 여러분들의 애정 덕분입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그날까지 사랑과 관심 변함없길 바라며, 질책과 충고 또한 아낌없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5월 22일
국토경제신문 발행인 조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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