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변에는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성경에서는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을 가리켜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라 부른다. 은총이 가득한 사람들 옆에 머무니 나는 참 행운아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군대에서 별을 단 건 이미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됐고, 내 좋아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차관에 기용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스스로 행운아라 칭해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내가 테니스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내게는 참 행운이다. 여러 곳의 동호회에 가입해 있는데, 특히 주말 새벽 수원에서 모이는 멤버들은 성공한 공직자들이 주축이다. 전직 장관도 있고, 공기업 CEO 출신, 현직 고위공무원들도 많다. 공직사회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행태(行態)는 어떠한지 나는 그들의 언행을 유심히 본다. 관찰 결과, 그들에게는 세 가지 정도의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 공통점은 효자였다. 그 누구도 “나 효자요”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언행에 ‘이 분 효심이 참 깊으신 분이구나’를 느낄 수 있다. 조상을 잘 섬기는 것도 효의 연장선상에 있는 공통분모였다. 두 번째는 의전에 빈틈이 없었고, 선배에게 깍듯했다. 세 번째는 민원 해결에 대한 적극성과 즉시성(卽時性)이었다. 주변인의 애로사항을 들으면 위법 부당한 청탁이 아닌 한, 즉시로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소규모 비공식 조직(非公式 組織)이라는 국한된 무대에서 바라본 것이며 성공이라는 잣대도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자가 주관적 시각으로 본 공직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은 대게 그렇더라는 것이다. 내가 행운아라는 것 역시 이런 사람들 속에서 이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근묵자흑 근주자적, 가까이 있다 보니 배우게 되고 어느덧 따라하고 있어 행운이라는 것이다. 


내가 본받고 배우고자 하는 삶의 방식, 곧 성공한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가만히 뜯어보면 한마디로 ‘주변인에 대한 배려’로 압축된다. 효도 그러하고 의전도 그러하며 민원해결 또한 주변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당신이 잘 살아야 내가 행복하다’는 배려가 성공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주변인이 잘 살아야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고, 주변인이 건재해야 막걸리라도 한잔 얻어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생사를 넘나드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기로에 서서, 결국 삶을 택하게 된다면 “나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생존을 택한다. 손가락이 잘려 나가도 팔이 없어진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팔을 잃어도 몸을 잃은 것보다는 훨씬 감사한 일이라고 위안하는 식이다.

 

그러니 이왕에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감사하면서 사는 게 낫다. 종교인들처럼 모든 일에 감사하고 모든 일에 즐거워하면 그냥 행복해진다. 다만, 감사하는 마음은 주변인을 배려하면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혼자만 잘 살겠다고 주변인을 뿌리치고 깨부수는 심성(心性)의 토양에서는 감사의 마음이 자랄 수 없다. 주변인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며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얼굴이 화사해지고 젊은 한때 그 강렬하고 섬뜩했던 안광(眼光)도 온화한 눈빛으로 변하게 된다.


국토경제신문이 올해로 창간 8주년을 맞았다. 8년 동안 같이 해 준 독자들에게 이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잘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이다. 독자들의 사랑, 늘 과분하다는 생각뿐이다. ‘국토경제가 무슨 돈 되는 정보를 주었으며, 뭐 대단한 정책을 제시했다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시나’하는 느낌이다. 다만,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내세울거리다.
건설경기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어렵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국토경제의 170만 건설인 독자 여러분들이 살아야 내가 산다. 지쳤거든 다시 힘내시기 바란다.


2016년 5월 20일
국토경제신문 발행인 조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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