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공무원이라 함은 ‘우수한 젊은 인재가 공직에 근무하는 것을 명예롭고 보람 있는 일이라 여기며 평생의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수한 인재가 되기 위해 이들은 꽃다운 젊음을 책과 씨름했다. 독서실에 틀어박혀 헌법 행정법 행정학 경제학 등을 통달했고, 임용되어서는 특별권력관계의 일원으로서 남들이 흔히 누리는 기본권도 일정부분 제약 당하며 살아왔다. 국록을 먹는다는 건 명예롭고 보람된 일인데다 또한 나의 최종 상관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라는 무한한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사무관은 따라서 대통령의 최하위 수족으로 대통령의 국정지침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행정부의 꽃’이라는 신념으로 무장돼 있었다.


지금 당장의 직속상관은 과장이지만, 과장의 직속상관은 실국장이요, 실국장은 장차관의 지휘를 받고, 장차관은 대통령의 뜻을 받드니, 내가 곧 대통령의 업무를 수행하는 행정부 직업공무원이라는 보람과 긍지로 업무를 수행했다. 계선조직 어느 직위에 있든 대통령 휘하에 있는 국토부 공무원으로서 관료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으로 살았다.
그런데 요즘 이런 자긍심이 무너지고 있다. 박근혜정부 이후 세월호 참사까지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점점 더 자괴감에 빠지고 있다.


인사권은 선거에서 이긴 자만의 전리품이라고는 하지만, 관료조직과는 동떨어져 있던 연구원 또는 교수 출신이 관료조직의 수장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조직의 일체감에 금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심지어 교수는 다시 교수자리로 되돌아가면 그뿐이라는 불평과 함께, 관료조직의 무기력함에 공허한 생각만 들 뿐이다. 특히 최근 대한주택보증 사장에 연구원 출신이 임명되면서 이런 허망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관피아 척결’이란 국정철학 아래, 국토부 출신 관료는 응모도 못했다. 의사는 내비췄으나 장관의 만류에 막혀 서류제출도 못했던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장관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것이다. 아니 그게 조직 수장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였다.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저를 믿고 따랐던, 평생을 같이 했던 야전 사령관들입니다. 관피아가 아니라 고급인력의 재활용이라고 발상을 전환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을 것이다. 또한 “우리 조직 인사적체의 숨통을 틔워야 합니다. 직업공무원이라는 소임을 대과없이 마치고 집에서 놀고 있는 인력들이 많은데 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한다”고 고집을 부렸을 것이다. 심지어 “제가 자리를 내놓겠습니다. 수하들의 눈이 저의 입술에 쏠려 있는데, 이런 상소를 관철시키지 못 한다면 수하들에게 ‘따르라’고 명할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행정부 수반을 다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무런 대책, 아무런 후속수단 없이 그저 “응모하지 말라”는 명령만 있었을 뿐이다. 계선조직의 직속상관을 잘 보필하면 언젠가는 나도 수장이 되어 조직 구성원을 끌어주고 당겨주는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교수출신 장관이 온 뒤로는 조직의 문화가 이렇게 바뀌어 버렸다. “공무원은 열심히 일해도 공무원이요, 대충 일해도 공무원이다. 희망이 없고 멘토가 없는 곳에서 무슨 낙으로 일에 심취하겠는가. 열심히 공부해서 ‘청운의 푸른 문’을 박차고 들어가라고 가르쳤던 아들에게 이제는 석박사 학위 따서 연구원 또는 교수나 돼라고 가르치기로 했다.”


직업공무원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전쟁의 폐허에서 60년 만에 나라가 융성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여기에 훌륭한 인재들이 직업공무원으로 입문해 행정부 수반의 수족이 되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무원이 부패하거나 공무원의 사기가 저하되고서는 나라가 융성할 수 없다. 목하 꺾여져 가고 있는 국토부 공무원, 나아가 전 부처 공무원들의 사기를 누가 북돋워 줄 것인가. 국운 상승을 위해 모두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2015년 1월 22일
조관규 편집국장 

저작권자 © 국토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