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시장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를 중심으로 공공발주 물량의 적정공사비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공공사가 최저가 발주와 운찰제 위주에서 벗어나 적정공사비 중심의 발주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건설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대책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공공공사의 적정공사비부터 보장하는 것이 선진화의 출발점이라는 목소리가 많다”고 밝혔다.
저가 공사는 무리한 공기단축과 불법 재하도급, 안전 조치 미흡 등을 초래하고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현장 근로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건설업 재해자는 2만2782명이었으며 이 중 사망자는 전년 대비 1.6% 증가한 621명이었다.
전체 취업자 중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2%인 데 비해 재해자 비중은 24.4%, 사고성 사망자 비중은 41.7%로 타 산업보다 재해율과 사망률이 월등히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적정임금제’ 도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적정임금제(Prevailing Wage)를 통해 저가수주경쟁을 억제하고 적정공사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정임금은 연방과 주, 시가 공공공사에 적용하는 원가 반영의 기준이자 지역별 직종별 최저임금이다.
연방정부 노동부가 주별 직종별 임금을 조사해 발표하면 공공발주자는 적정임금을 공사원가에 반영하고 업체는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연방정부는 이를 위반한 건설업자에게는 일정 기간 동안 공공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같은 적정임금제 시행으로 발주자와 업체, 근로자 간 상생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적정임금제에 의한 적정공사비가 도출됨으로써 건설업체간 덤핑입찰경쟁이 억제됐고 가격이 아닌 기술력으로 경쟁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연구위원은 “적정공사비의 확보는 가격경쟁이 아닌 기술경쟁을 촉진하는 효과적인 방안”이라며 “적정공사비 보장이 확보되면 재해율 감소 효과와 더불어 내국인 고용 여건 조성, 일자리 창출 등 내수진작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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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례>

 

1930년대 대공항 계기 적정 공사비 도입 

미국, 건설산업 상생 체계 구축 성공

 

미국은 공공공사의 경우 적정노무비를 전 사업장에 적용함으로써 건설산업의 선순환 발전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공공 발주공사에서 건설업체가 받는 낙찰금액이 9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공 발주자의 설계금액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공공공사에 대한 원칙과 적정공사비의 적용 때문이다.

적정공사비가 도입된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지난 1927년 뉴욕주가 베테랑병원을 발주했을 때 치열한 수주경쟁이 벌어졌다.
뉴욕주의 업체들은 지역노동시장에 근거한 임금으로 입찰한 반면 앨라배마주의 건설업체는 저임금을 기반한 가격으로 입찰해 수주에 성공했다.

 

이같은 수주 사례가 여러 주들 간의 문제로 비화되자 미국 연방정부는 관련 법을 제정하고 적정 공사비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시정부는 지역별 직종별 최저임금을 조사해 발표하고 건설업체가 적정 임금을 어길 경우 일정 기간 동안 공공공사 입찰을 제한했다.

 

공공 건설시장에서 적정 공사비가 적용되자 임금삭감을 통한 가격경쟁이 사라지고 적정 임금 지급과 기술력에 의한 경쟁 등 건설산업 전반에 긍정적이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금 삭감 경쟁을 억제함으로써 전체적인 적정 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정상적인 시공을 가능케 했고 건설업체 전체의 파이를 크게 함으로써 원수급자와 하도급자, 근로자 모두 상생할 수 있었다.

임금 삭감이 없어지다 보니 고임금의 고숙련근로자가 건설현장에 남아있게 되면서 품질제고와 하자율 하락 등 비용 절감이 가능해 졌다.

건설근로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보호받게 되자 신규 인력의 건설시장 유입으로 기술력과 품질 상승의 효과를 거뒀다.

이와 함께 가격경쟁을 억제하고 기술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공정관리의 강화, 공법의 개선, 고숙련에 의한 고품질 유도 등으로 경쟁을 이끌어 냈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숙련된 근로자를 양성하는 데는 5년이 걸리는 데 수입이 보장되지 않으니 건설현장에서 숙련노동자가 사라지고 있다”며 “우리도 하루빠리 적정 공사비제도를 도입해 무너지고 있는 건설산업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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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전문건설협회 건설지원실 김정환 실장

 

“발주기관 예산절감 이유로 공사비 부당 감액”

부실시공·고용불안… 건설산업 경쟁력 저하 초해

 

-적정공사비가 필요한 이유는?

“건설공사의 적정공사비는 최종 목적물의 품질 및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이나 단순하게 감사나 예산절감의 문제로 접근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정부는 예산절감을 목적으로 지난 2006∼2012년까지 2000여 항목에 대한 표준품셈을 하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발주기관은 예산, 감사 등을 이유로 현장여건, 작업조건 등에 따른 할증기준을 아예 적용하지 않거나 품셈 노무량을 부당하게 감액하고 있으며 실적공사비 적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실적공사비는 100억원 이상 대형공사 계약단가로 품셈보다 평균 20% 이상 낮고, 적격심사의 경우 낙찰률에 연동돼 한번 더 수주금액이 하락해 품셈 대비 68%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원·도급 건설생산체계의 특성상 표준품셈 하향 조정, 실적공사비 적용 확대 등에 따른 종합건설업체의 수주금액 감소는 손실비용이 고스란히 전문건설업체에 초저가 하도급으로 전가됩니다.


부실시공, 품질저하, 안전사고의 문제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기능인력 고용불안 등으로 이어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적정공사비 확보를 통하여 공공의 안정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적정공사비가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국내의 건설환경은 높아지는 설계기준 및 요구조건과는 반대로 공사비는 하향·감액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노무와 장비를 사용해 직접 시공을 담당하고 있는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는 공사비 부족에 따른 부도, 도산의 위험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더욱 강화되는 하자 발생유형, 담보책임 기간 연장, 무분별한 하자청구 소송 등으로 종합건설업체는 중소 전문건설업체를 공생·동반성장의 관계가 아닌 자신들의 손실을 전가시키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적정공사비 부족은 저급자재의 사용, 안전규칙 미준수, 무리한 공기단축에 따른 품질저하 등으로 하자분쟁이 증가하고 소모적인 소송의 남발로 동반자적 관계인 원하도급 관계의 신뢰가 무너져 결과적으로 건설산업의 경쟁력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해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나?

“우리 협회는 국토교통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관계기관에 실적공사비 제도 폐지를 건의하고, 폐지 전까지 100억원 이하 건설공사는 실적공사비 적용을 제외할 것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표준품셈은 합리적으로 개선하여 내실화하되 작업여건 등에 따른 각종 할증요소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품셈기준을 부당하게 감액할 수 없도록 명문화할 것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노무비, 장비비 등 비용이 모두 지급되는 ‘1일작업량 미만 소규모 공사’의 경우에도 할증기준이 조속히 마련돼 적정공사비가 반영될 수 있도록 국토부 ‘적정공사비 확보 TF’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대한건설협회, 전기공사협회, 정보통신공사협회 등 유관기관들과도 공조해 건설업계 전반적으로 적정공사비가 충분히 확보돼 대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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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기관·업계, 최저가낙찰제 확대 반대 
 
정부의 최저가낙찰제 확대 방침에 대해 발주기관을 비롯한 업계 모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최저가낙찰제도의 개선방향 조사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의 공사에 대해 적용되고 있는 최저가낙찰제도를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건설업체 발주기관 용역업체(감리 설계 엔지니어링) 모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최저가낙찰제 적용 대상을 30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 모든 공사로 확대하고자 했다.
하지만 중소 건설사들의 심각한 경영난을 감안해 2년 간 유예해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따르면 발주기관 등을 비롯한 159곳의 전체 응답자 가운데 86.2%가 최저가낙찰제 확대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발주기관의 38.8%가 부실공사 초래 가능성을 이유로 들어 현행 최저가낙찰제도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산연 최은정 연구원은 “전체 응답자의 80.4%가 최저가낙찰제하에서 부실공사나 안전재해가 증가했다고 답했다”며 “발주기관에서도 응답자의 74%가 부실공사나 안전재해가 증가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또 전체 응답자의 90.5%가 최저가낙찰로 인해 적자가 우려되거나 적자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적자가 우려되거나 적자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발주기관도 71%에 달했다.


적자 우려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와 용역업체가 최저가 입찰에 참여하는 이유는 수주 물량의 부족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오는 2014년부터 100억원 이상 모든 공사에 대해 전면 확대하기로 한 최저가낙찰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은정 연구원은 “현행 최저가낙찰제를 대신해 가격과 기술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최고가치낙찰제로 전환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최고가치형 입찰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제도 설계 과정에서 샌드위치 신세인 중견 건설업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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