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동네 사업지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는데, 네 신용으로 네가 책임져서 정비사업을 하라고 하니 누가 하겠습니까? 자체보증으로 30억원을 빌리라고요? 그러다가 사업 중단되면 압류 들어오고 파산하는데 누가 그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진행하겠습니까? 절대 못합니다.”

서울시 모구역 추진위원장의 말이다.

이처럼 주민 동의에 의해 진행되는 정비사업 특성상, 정비사업 출구전략은 그야말로 재난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구역이 해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성이 뛰어난 사업지에서도 주민이 사업추진에 동의하기를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국 대부분의 정비사업 진행은 멈춰진 상태다.

  
사업 수익성을 보고 적극적으로 정비사업에 뛰어들었던 건설사와 정비업체에서도 자금지원을 끊은지 오래다.

각 사업지에서는 추진위원장과 조합장 월급은 고사하고 전기세 감당하기도 힘들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지금까지 시간적·경제적 비용을 지불하며 사업을 지탱해온 추진 주체들이 사업 추진을 포기하는 사례가 수도권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공융자 상한금액을 11억원에서 30억원으로 늘린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마냥 반길 수 없는 상황이다.   
공공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이 보증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구역이 해제가 되면 그 다음날부터 융자를 집행한 대한주택보증은 위원장이나 조합장의 집을 가압류 할 수 있다.    
시스템 상 추진위나 조합 설립에 동의한 사람들에게 돈을 모아서 융자금을 갚아야 하지만 법적 강제 집행 권한이 없는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상환액을 받아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
공공융자를 받은 사업지의 추진위가 해산되면 위원장이 융자금의 전부를 책임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저리의 공공융자 시스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사업 자금을 지원해줄 업체를 찾고자 하는 사업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의 자금 지원의 고리를 끊어 정비사업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공공융자 자금지원 시스템이 유명무실해 진 셈이다.

 

자금융자의 관리와 상환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주택보증도 서울시의 융자금 증액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사업 진행이 어려워졌을 때 결국 융자금 상환을 책임지는 것은 대주보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서울시 요청으로 융자업무를 대행해 왔는데 지금와서 사업지를 해제하고 알아서 돈을 받으라는 격이라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융자금이 지급된 사업지가 실태조사 대상 리스트에 올라오면서 대주보는 실태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사고 사업지가 한 군데만 나와도 곧바로 대주보는 이익 없이 손실을 모두 떠안 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융자금액이 높아지면서 현실적으로 상환액을 받기 힘들 것이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결국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위원장과 조합장에게 신용보증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민주택방식의 자금 운영을 제안하고 있다.
국민주택방식은 기금에서 손실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정비사업 추진에 대한 위험을 분담해 책임져야 한다는 시각이다.    

정비사업의 공공성을 감안해 70%의 매몰비용까지 지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비사업 추진에 대한 위험부담을 주민에게 모두 전가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실채권 처리의 안전장치로 연대보증제도를 운영하는 대신, 융자금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공공융자 대여 시에 주민 동의율을 높여서 사업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니빌산업개발의 임동현부장은 “현재의 제도로는 꼭 필요한 사업지도 정비사업 개시를 하기가 어렵다”며 “자금 지원을 통해 사업 재개 및 개시가 가능한 사업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연대보증제도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말했다. 

저작권자 © 국토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