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설계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인데 한국이 하면 쓰레기통 행이다. 시공 열심히 해도 돈은 결국 외국 설계기업이  벌어가는 현실인데 억울하지 않나요?”

 

국내 설계·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설계부분의 해외쏠림 현상을 두고 이 같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특히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관계자는 한국도 설계가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지만 국내기업이 설계할 경우 상업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디자인부분에서는 정도가 더욱 심해 외국기업에 디자인을 위탁할 경우 악순환은 더 가중된다. 외국 디자인기업에서 일정부분에 대해 설계업체와 재료까지 정해주기 때문이다.

 

한국 건설기업의 시공능력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수준이다. 지난 2010년 완공된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와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도 각각 삼성물산과 쌍용건설에 의해 준공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건물 역시 시공에 국한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시공을 비롯해 건물, 플랜트, 교량, 도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설계부분도 함께 발전해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국산 초고층 건축설계기술인 ‘StrAuto(구조설계자동화 프로그램)’로 뉴욕에서 기술발표회를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MKA사의 카타르 도하컨벤션센터타워에 StrAuto설계기술을 적용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StrAuto’는 최근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공사 입찰과정에 적용돼 기본설계안 대비 15~25% 골조물량이 절감되는 설계안을 도출하는 등 프로그램의 우수성이 입증된 기술이다.

 

비단 건축물뿐만이 아니다. 주경간장이 1545m에 달하며 세계 4번째로 긴 경간장을 가지고 있는 이순신대교의 경우 순수 국내기술로 설계했으며, 국내에서 생산된 자재로 시공했다. 다만 오랜 시간 시공에만 주력해왔던 터라 한국의 설계수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자기 것을 천시하고 남의 것만을 숭배하는 자천배타(自賤拜他). 국내에서도 국내 설계수준을 백안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민간시장이나 공공발주 시장에서 설계 조달 시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업계에서도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기술로의 도약을 위해 설계인력을 보유하고 그들이 경험과 실적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 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건설기업이 소위 EPC(설계 조달 시공)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플랜트 분야에서 EPC능력을 세계에서 인정 받는 데 대략 15년이 걸렸다. 설계분야에서도 적어도 15년 이내에 세계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과 업계의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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