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감정원을 공단으로 전환할 것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부감법)’ 일부 개정안은 국토해양부가 발의한 것이지만 한국감정원의 수작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개인의 감정평가 법인은 이번 부감법 개정안을 국토부의 정책철학이라고는 보지 않고, 한국감정원의 정책로비나 입김이 작용했다고 단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의 이 같은 단정 근거는 지난 2008년 국회에서 발의한 부감법 개정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과 김성순 의원이 각각 발의한 부감법 개정안의 피상적인 골자는 한국감정원의 설립근거를 명문화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개정안의 내용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부동산가격공시와 관련한 대부분의 총괄업무를 민간단체인 감정평가협회가 행하고 있고 공정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전제하고 “공적 기관인 한국감정원의 설립근거를 명문화하고 부동산가격공시업무 및 부대업무를 한국감정원의 업무로 하여 감정가격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하고자 한다”고 개정 취지를 밝히고 있다.
부동산가격공시업무와 부대업무를 한국감정원에게 주라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밥그릇을 통째로 뺏으려는 한국감정원의 이같은 공격에 비상이 걸린 감정평가협회는 민주당 박기춘 의원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이에 박기춘 의원은 “감정평가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감정평가협회를 두어야 한다”는 협회 설립의 법적인 명문규정을 마련하고 이어 “감정평가협회가 운용하는 ‘공적평가심사위원회’를 ‘감정평가심사위원회’로 법정화 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협회의 업역을 확대하기 위한 상반된 입장의 법률 개정안이 각각 발의되는 해프닝이 빚어진 것이다.


국회의 입법 검증 시스템이 업역다툼이 있는 법안을 통과시킬만큼 허술하지는 않다.
검토에 착수한 전문위원들은 한결같이 반대의견을 쏟아냈다.
특히 업역다툼이 있는 주요 위탁업무를 모두 감정원이 갖겠다는 업역 변경사항에 대한 도표를 작성해 감정원의 욕심이 지나침을 적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이번 공단설립을 골자로 하는 부감법 개정안에 감정평가협회가 반대입장을 표명하자, 그때 거론 됐던 위탁업무를 감정원에 넘기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 7월 1일 감정평가협회에 발송했다.
내용은 △표준지 공시지가의 조사·평가 및 부대업무 △표준주택가격에 관한 도서·도표의 작성공급 △감정평가업자의 지도 △감정평가정보체계의 구축·운영 등에 대한 업무를 감정원에 이관하겠다는 통보였다.


국회가 감정원과 업역다툼을 문제삼아 반대의견을 제시, 보류하고 있는 안건에 대해 국토부가 이를 무시하고 감정원에 넘기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국토부의 사활을 건 이같은 감정원 감싸기에 대해 업계에서는 물론 국토부 출신 고위 공무원과 특히 국회 전문위원들이 강한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8월 발표된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추진계획에 감정원은 기능조정대상에 포함돼 있음에도 공단화를 시도하면서 민간업역까지 넘보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다.
여기에다 국토부와 감정원이 한 편이 돼 공단을 설립하고 사적 감정시장까지 잠식하려는데 대해 국정감사에서도 여야에 뭇매를 맞았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감정원의 이같은 행보를 민영화 회피수단이라고 질타했고, 같은 당 안홍준 의원은 민간업체의 반발을 직접 거론했으며,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공단화를 논하기 전에 부실감정부터 없애라고 질책했다.


어쨌든 어떤 형태로 포장되든 간에 감정원과 국토부가 합작한 업역확대 정책을 내 놓을 때마다 돌을 맞는 곳은 힘없는 민간 평가업체들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로 감정평가협회장이 낙마했다.


감정평가협회 관계자는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에 연못 개구리는 중태 아니면 사망인 꼴이 민간 업체의 현실”이라고 개탄하고 “공단화 추진에 앞서 업역다툼부터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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